피타티모
사적역사
왕부 시대의 등대 역할을 한 봉화대터로 창설 연대는 불명. 중국이나 사츠마를 왕복하는 배 등이 귀항하는 시기나 부근 어민의 배가 먼 고기잡이로부터 돌아오는 무렵에 솔잎을 태워 근해를 항행하는 배에 섬의 위치를 알려 배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다고 한다.
기본 정보
- 주소
- 903-0804 오키나와현 나하시 슈리이시미네초 2-250-97 부근
- 전화 번호
- 098-917-3501 나하시 문화재과
- 영업 시간
- 특별히 없음
- 휴일
- 특별히 없음
- 가격
- 무료
- 주차
- 없음
- 가장 가까운 역
- 도리호리교차로에서 자동차로 5분
부수 정보
- 학술 정보
- "문화재(시 지정 사적) 지정 연월일 : 1998년 3월 20일
왕부 시대의 등대 역할을 한 봉화대터로 창설 연대는 불명. 니시하라초와 하에바루초, 슈리이시미네초의 3지역이 접하는 언덕에 있으며, 지번은 슈리이시미네초 2-250번. 눈 아래로 태평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언덕에, 보통 「모(毛)」라고 불리는 싹이 난 언덕에 봉화대가 설치된 것에 유래해서 피타티모(火立毛)라고 불렸다. 예전에는 표고 160m 이상이었지만, 그 무렵보다 아주 조금 내려간 동쪽 경사면을 종횡 5~6m 정도, 깊이 1m 정도의 상자 형태로 파서 안쪽에 방토를 위한 돌담을 쌓았다. 중국이나 사츠마를 왕복하는 배 등이 귀항하는 시기나 부근 어민의 배가 먼 고기잡이로부터 돌아오는 무렵에 이 돌담 안에서 솔잎을 태워 바다를 항행하는 배에 섬의 위치를 알려 배가 태평양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다고 한다. 축조와 관련되었다고 생각되는 인물의 이름 등이 새겨진 세립사암(細粒砂岩, 니비누후니)이 방토용 돌담에 박혀 있었지만, 마모가 심해 판독할 수가 없다.
봉화대는 오키나와전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언덕 정상은 깎여져 묘지군이 되어 버렸다. 관련 인물의 이름이 새겨진 돌만이 남아 있다." - 정보 출신
- 나하시 교육위원회 문화재과(2007) 『나하시의 문화재』 나하시 교육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