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메가와 세이부 생가터, 개인 주택 앞”
역사
“류큐 처분 시기의 산시칸(三司官, 관직)으로, 처분 반대의 지도자였던 가메가와 세이부의 생가터.”
기본 정보
- 주소
- 903-0811 오키나와현 나하시 슈리기보초 3-25 부근
- 영업 시간
- 특별히 없음
- 휴일
- 특별히 없음
- 가격
- 무료
- 주차
- 없음
- 가장 가까운 역
- 모노레일 기보역에서 도보 3분
부수 정보
- 학술 정보
- "류큐 처분 시기의 산시칸(三司官, 관직)으로, 처분 반대의 지도자였던 가메가와 세이부의 생가터. 가메가와 가문은 모우지 도미구스쿠둔치(毛氏豊見城殿内)의 분가로, 요나구스쿠 마기리(与那城間切)의 소지토(総地頭, 영주) 가문이다.
1871년 이신케이가시(維新慶賀使, 메이지유신 경축 사절)가 상경. 쇼타이(尚泰)를 류큐번왕(琉球藩王)으로 한다는 취지의 명을 받고 귀국했지만, 이것이 류큐 처분의 포석이 되었기 때문에 가메가와 등은 케이가시였던 이에 왕자 초초쿠(伊江王子朝直), 기완 우에카타 초호(宜湾親方朝保) 등을 격렬하게 규탄, 산시칸(三司官, 관직) 기완을 사임하게 했다.
1875년에 메이지 정부의 처분관 마츠다 미치유키(松田道之)가 오고 처분을 위한 제반 정책이 차례대로 밝혀지는 가운데, 가메가와는 반일파(완고당(頑固党))의 리더로서 사족(士族)층의 저항 운동을 지도했다. 처분 후에도 탈청(脱清(脱琉渡清, 류큐를 떠나 청나라로 간다))파를 지원하거나 구 사족층의 현 행정에 대한 비협력을 획책하는 등, 저항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류큐 왕조의 붕괴라고 하는 저항하기 힘든 현실에서도 그래도 더욱 더 저항하려고 했던 가메가와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의 한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정보 출신
- 나하시 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