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항 및 주변 고적
역사
나하의 항구는 14~15세기 이래 류큐 왕국의 현관문으로 번영한 오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본 정보
- 주소
- 900-0035 오키나와현 나하시 돈도초 2 나하항 페리 터미널항쪽 출입구
- 영업 시간
- 24시간
- 휴일
- 연중무휴
- 가격
- 무료
- 주차
- 유료 주차장 있음
- 가장 가까운 역
- "아사히바시역, 나하 버스터미널에서 도보 약 15분"
부수 정보
- 학술 정보
- "나하의 항구는 14~15세기 이래 류큐 왕국의 현관문으로 번영한 오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교역시대에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조선, 일본과 무역을 했으며, 동아시아 일대의 교역항이었다. 그 후에도 오키나와 제일의 항구로서 발전을 이루었다. 그래서 항구 주변에는 많은 명소와 고적이 산재하여 있었고, 풍부한 자연과 함께 나하를 대표하는 경관을 이룬다. 이러한 경관은 오키나와전으로 인해 일변했지만, 왕부 시대의 그림과 메이지 시대의 사진을 통해 지난 날을 되돌아볼 수가 있다.
■미구스쿠(三重城)
항구의 북쪽 해안에 설치된 성채. 둔두사치(通堂崎)에서 구바시(小橋), 오하시(大橋), 우치누티라(沖ノ寺), 나카노하시(仲ノ橋), 나카미구스쿠(仲三重城), 츠키바시(ツキ橋)를 거쳐 미구스쿠에 이른다. 쇼세이(尚清)왕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제1 쇼씨 시대의 창건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남쪽 해안의 야라자무이구스쿠(屋良座森城)와 쌍을 이루고 있다.
■린카이지(臨海寺)
둔두사치(通堂崎)와 미구스쿠(三重城) 사이의 벼랑 위에 있으며, 우치누티라(沖ノ寺)라고 불렸다. 시마즈가 침입하기 전에 창건된 진언종의 절로, 절 안에 구마노곤겐(熊の権現)을 함께 모셨다. 1908년의 항구 축조 공사로 절은 가키노하나(垣ノ花), 곤겐은 아사토하치만(安里八幡)로 옮겨졌고 그 터는 창고가 되었다.
■게이온테이(迎恩亭)
책봉사가 왔을 때 상륙하던 곳인 둔두사치(通堂崎)에 있었던 정자. 둔두야(通堂屋)라고도 했다. 책봉사는 여기에서 산시칸(三司官, 관직) 등의 마중을 받고 숙소인 덴시칸(天使館)으로 향했다. 데이슈(鄭週)의 붓으로 여겨지는 「게이온(迎恩)」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당선 구무이(唐船小堀)
도당선(渡唐船, 중국과의 무역선)이나 책봉선(冊封船) 등을 수리했었던 수로로, 시마즈가 침입하기 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된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 매립되었다.
■시안바시(思案橋)
히가시마치와 와타시지(渡地) 사이에 걸려 있었던 다리. 와타시지 유곽으로 가는 길에 있었기 때문에 시안바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둔두(通堂)
히가시마치의 항구쪽 지명. 둔두사치(通堂崎)에 있었던 둔두야(通堂屋)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지만, 자세한 것은 불명.
■와타시지(渡地)
나하항 북쪽 해안과 동쪽의 지명. 건너편 가키노하나(垣の花)로 가는 와타시(渡し, 나룻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지명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당선 구무이(唐船小堀)가 완성된 이후에는 히가시마치와의 사이에 시안바시(思案橋)가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와타시지 유곽, 유와구스쿠(硫黄城), 고진도(荒神堂) 등이 있었다.
■먀쿠구라(宮古蔵)
미야코나 야에야마로부터의 조공 등을 수납 및 관리했던 관청 겸 창고. 창건은 근세 초기라고 생각된다. 메이지 시대 이후 세무서가 설치되었다.
■유와구스쿠(硫黄城)
와타시지(渡地)의 동쪽 벼랑 위에 축조된 구스쿠로, 중국으로의 진공(進貢)품인 유황을 저장했다고 한다. 14~15세기의 창건으로 여겨지며, 오모노구스쿠(御物城)와 함께 야라자무이구스쿠(屋良座森城), 미구스쿠(三重城) 축성 이전의 항구 방루였다는 설도 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 허물려 농공 창고가 되었다.
■오모노구스쿠(御物城)
나하항 내의 작은 암초에 축성한 구스쿠로, 대교역시대에 교역품을 수납 및 관리하는 창고였다고 한다. 1879년의 류큐 처분 이후에는 요정 풍월루가 있었다. 기타메이지바시(北明治橋)에 의해 오우노야마(奥武山)와 연결되었다.
■우틴다(落平)
오우노야마 건너편 가키노하나에 있었으며, 벼랑 위에서 솟아나는 물이 폭포와 같이 낙하하고 있었다. 근세부터 쇼와 시대 초기까지 벼랑 아래의 물을 파는 배가 수많은 통에 물을 받아 나하로 운반했다.
■스라바(スラ場)
나하항 남쪽 해안, 가키노하나 앞 나카스의 서쪽에 있었던 고대 류큐부터 근세까지의 조선소. 1881년에는 감옥이 설치되었다. 나카스의 동쪽에는 「친페우타키(君南風御嶽)」가 있었다. 현재는 미군 군항의 일부이다.
■스미요시(住吉)
나하항 남쪽 해안의 지명. 지명은 구릉 중턱에 있는 스미요시 신사(住吉神社)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구릉은 소나무숲이 아름답고, 달 구경의 명소였다.
■야라자무이구스쿠(屋良座森城)
항구 남쪽 해안의 성채로, 1554년에 창건. 동년의 건립 비문에 항구의 방비를 위해 축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군 군항의 공사로 인해 철거되어 부두의 일부가 되었다."